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710
한자 李强助
영어공식명칭 Lee Gang J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0년연표보기 - 이강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4일 - 이강조 태룡리 장터 만세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1월 20일 - 이강조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태 90도 처벌
몰년 시기/일시 1954년연표보기 - 이강조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3년연표보기 - 이강조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단장면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지도보기
활동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강조(李强助)[1890~1954]는 1890년에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이강조밀양 단장면의 주민으로서, 1919년 4월 4일 단장 장터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의 시위를 계획하고 주동한 것은 표충사의 승려들로서, 장날인 4월 4일 태룡리의 장터에서 만세 의거를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는 동시에 인근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강조는 적극 호응하여,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4일 시위 대열은 장터에서 열광적으로 만세 운동을 전개한 뒤, 단장면 헌병주재소로 행진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고 돌을 던져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이강조도 시위 대열에 포함되어 단장주재소로 가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군중들은 헌병주재소를 파괴하고 헌병군조를 공격할 정도로 격렬하여, 밀양헌병분견대와 밀양경찰서 병력이 출동하여 발포를 하고서야 오후 2시경에 해산되었다.

이강조는 경찰에게 피검되어 1919년 11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태(笞) 90도를 처벌받았다. 이강조는 1954년에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이강조에게 2003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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