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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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鳳夏 |
영어공식명칭 | Park Bong Ha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진성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박봉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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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4일 - 박봉하 태룡리 장터 만세 운동[용회동장터 만세 운동]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20일 - 박봉하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재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태 90도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2016년 - 박봉하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원서리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박봉하(朴鳳夏)[1884~?]는 1884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박봉하는 1919년 4월 4일 태룡리 장터[용회동 장터]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였던 한용운은 경성불교 중앙학교 학생 오택언과 지용준을 통도사로 내려보냈다. 이에 통도사 승려 5명이 3월 20일 표충사를 방문하여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4월 4일 단장면 태룡리 용회동 장터에서 장이 열리는 날로 결정하였다. 4월 4일은 용회동장터 장날이자 사명대사 춘향일이기도 하였다.
표충사 승려들이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었고, 인근에 비밀리에 시위 계획을 알렸는데, 박봉하는 원서리 주민들을 독려하였다. 이날 모인 5,000여 명의 군중 속에서 12시 30분경 표충사 승려들이 죽간 끝에 ‘조선 독립 만세’라고 크게 쓴 깃발을 내걸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였다. 장터를 돌며 시위를 이어 가자 헌병과 경찰들은 해산시키려 하였고, 그러자 군중은 헌병주재소에 돌을 던져 파괴하였다. 추가로 병력이 파견되고 발포하기에 이르러서야 오후 2시경 강제 해산되었다. 이 사건으로 364명이 검거되고 71명이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박봉하는 1919년 11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열린 재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태 90도를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박봉하에게는 2016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