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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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丙喆 |
이칭/별칭 | 이병철(李炳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지영 |
출생 시기/일시 | 1887년 5월 28일 - 이병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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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 이병철 의열단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이병철 의열단 국내로 폭탄 반입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5월 - 이병철 국내로 반입된 폭탄 발각 |
몰년 시기/일시 | 1925년 1월 14일 - 이병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이병철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11월 - 이병철 의열단 결성 |
출생지 | 가곡리 -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 |
거주|이주지 | 안둥현 -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의열단 활동 |
[정의]
경상남도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병철(李丙喆, 李炳哲)[1887~1925]은 1887년 5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이병철은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서간도 안둥현[安東縣]에 정착하였다. 안동현에서 원보상회(元寶商會)라는 미곡상을 경영하였는데, 1919년 11월 만주에서 의열단(義烈團)이 결성되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의열단은 김원봉(金元鳳)을 비롯하여 윤세주(尹世胄), 고인덕(高仁德), 한봉근(韓鳳根) 등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독립운동 단체였다. 단장에는 김원봉이 선출되었다. 이병철은 의열단에 많은 자금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원보상회를 연락 기점으로 삼아 무기 구입, 동지들의 은닉 등을 지원하였다.
1920년 초 의열단은 국내로 폭탄을 반입하여 일본 고관과 중요 관공서를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1920년 3월 의열단원 곽재기(郭在驥), 이성우(李成宇) 등이 상하이[上海] 중국인으로부터 폭약과 탄피를 구하고 폭탄을 제조하여 국내로 보냈고, 1920년 4월에는 김원봉, 이성우 등이 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탄피·화약 등과 권총을 구하여 국내로 보냈다. 이병철의 원보상회가 반입 거점이 되었는데, 폭탄의 일부는 경상남도 밀양 김병환(金鉼煥)의 집에, 또 일부는 경상남도 창원 배중세(裵重世)의 집에 숨겨 두도록 하였다. 이후 곽재기, 이성우 등이 폭탄을 사용하여 의거를 실행하려 하였으나, 1920년 5월 김병환 집에 보관 중이던 폭탄이 일제에 발각되면서 곽재기, 이성우 등 여러 단원들이 일제에 체포되었고, 이병철 역시 사건 관련자로 지목되면서 일제에 쫒기게 되었다. 이병철은 닝고타[寧古塔]로 피신하여 생활하다가 폐렴에 걸려 1925년 1월 1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병철에게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