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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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萬植 |
영어공식명칭 | Jang Man Si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선미 |
출생 시기/일시 | 1874년 - 장만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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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4일 - 장만식 태룡리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 장만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9년 - 장만식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단장면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
활동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장만식(張萬植)[1874~1944]은 1874년에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4월 4일 단장면의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주동한 것은 표충사의 승려 이장옥, 이찰수, 오학성 등이었다. 장날인 4월 4일 태룡리의 단장 장터에서 만세 의거를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제작에 돌입하였다. 또한 인근 사찰은 물론, 걸어서 단장 장터에 올 수 있는 마을에 참여를 요청하였다. 이에 고례리의 유지였던 장만식은 적극 호응하여, 하루 전날인 4월 3일 이성발 등 지역 주민에게 장터에 모일 것을 독려하였다. 특히 4월 4일은 음력 3월 4일로 사명대사의 춘향일이어서 표충사 인근 주민에게는 축제일과 같았고, 고례리는 표충사가 있는 구천리와 가까운 곳이어서 장만식의 독려는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다.
4월 4일 장만식은 성도일 등과 함께 주민들을 인솔하고 단장 장터로 향하였다. 이윽고 12시 30분경 주동 인물들이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나팔소리를 울리며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장만식은 열렬히 시위에 참여하였다.
장만식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장만식은 1944년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200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