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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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天地 -寺地 |
이칭/별칭 | 「구천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양리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8년 7월 22일 - 「구천지 빈대절터」 김순극[남, 71]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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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 「구천지 빈대절터」 밀양문화원에서 발행한 『밀양지명고』에 「구천사」라는 제목으로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12월 30일 - 「구천지 빈대절터」 밀양시에서 발행한 『밀양설화집』1에 수록 |
관련 지명 | 건티재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 |
채록지 | 소태리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 |
성격 | 지명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주지|도사 |
모티프 유형 | 빈대절터 설화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 건티재에 있는 절터에 관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구천지 빈대절터」는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 동북쪽 건티재 옆에 있는 구천사 터에 관한 전설이다. 중이 많아서 구천사라고 불리던 번성한 절이 있었는데, 빈대로 인하여 망하였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구천지 빈대절터」는 2008년 7월 22일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에서 김순극[남, 71]의 구술을 한태문, 정훈식, 류경자, 조수미, 정은영, 임신주가 채록하였다. 2009년 12월 30일 간행된 『밀양설화집』 1권에 수록되었다. 유사한 내용의 전설이 1994년 밀양문화원에서 간행된 『밀양지명고』에 「구천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내용]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 동북쪽 건티재 옆에는 옛 구천사 터가 있다. 절의 규모가 매우 커는데, 승려가 9,000명이 산다고 하여 이름을 구천사라고 하였다. 어느 날 구천사 주지에게 한 도사가 찾아왔다. 주지가 도사에게 절에 승려가 너무 많아서 곤란하니 좀 줄일 방도가 없는지 물었다. 도사가 건티재 고개를 좀 낮추고 절 앞에 있는 송곳바위를 깨트리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음 날 주지가 인부들을 데리고 건티재로 가서 흙은 파내고 송곳바위도 깨트렸다. 그러자 깨진 바위 틈에서 붉은 피가 나오고 빈대가 무리를 지어 나와 절로 기어들기 시작하였다. 이 빈대들 때문에 승려들이 하나둘 떠나 결국 절이 망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 절터 주위에 있는 돌을 들추면 빈대 껍질이 하얗게 보인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구천지 빈대절터」의 주요 모티프는 ‘빈대절터 설화’이다. 빈대절터 설화는 전국적으로 널리 전승되고 있다. 절이 융성하다가 빈대가 많아서 절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는 구조가 대표적이며, 다양한 변이 양상을 보인다. 승려와 빈대의 대결에서 빈대가 승리하고 절이 망한 원인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밀양에서 채록된 전설에서는 절에 승려가 너무 많아 승려를 좀 줄이려고 하다가 일이 커져서 절이 아예 망하였다는 뒷이야기를 덧붙여 설득력을 더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