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676
한자 -運動
영어공식명칭 Saemaeul Movement|The New Village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유식

[정의]

밀양 지역 농촌 사회의 생활 환경 개선과 농가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전개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개설]

새마을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창하여 정부 주도로 추진된 국민운동이다. 1970년대 초반에는 가시적 성과를 얻기 쉬운 마을 가꾸기, 마을 안길 넓히기 등의 ‘생활 환경 개선’ 사업이 추진되었고, 1970년대 중후반에는 ‘농가 소득 증대’ 사업이 중점적으로 추진되었다. 1972년 5월 현재 경상남도의 새마을 가꾸기 사업은 2,290개 마을을 대상으로 14억 4000여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마을 안길 확장, 소하천 정비, 공동 우물 만들기 등 13개 사업이 시행되었다.

[밀양에서의 새마을운동]

밀양군 산외면 다원1리[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는 1972년 4월 생활 주거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모범 마을로 선정되었다. 안동 손씨 집성촌 양반 마을의 폐습에서 벗어나 너비 2m의 마을 안길 1.18㎞가 5m로 확장되었으며, 마을 앞 개울둑 450m도 고쳤다. 새마을 광장과 새마을 공원도 조성되었고 50가구의 흙 담장 1.28㎞도 블록 담으로 개량되었다. 주민들은 764만 7000원의 사업비 중 83%를 스스로 부담하고 노동력도 제공하였다.

당시 다원리의 새마을 지도자 손정호[44세]의 수기에 따르면 1971년 11월부터 1972년 4월 말까지 5개월 보름 동안 387회의 모임을 가졌으며, 마을 안길 넓히기에 따른 가옥 철거와 농로 확장에 따른 논밭 편입 주민 설득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업을 원만히 추진하여 나갔다고 한다. 1973년 11월 22일 전국 새마을 지도자 대회에서 손정호는 새마을 훈장 노력상을 수상하였다. 1978년에는 밀양읍 가곡2동[현 밀양시 가곡동]의 박양자가 새마을 훈장 노력상을, 단장면 미촌리의 손영길이 은탑 산업 훈장을 수상하였다.

농촌의 새마을 건설과 함께 새마을 도시 건설도 추진되었다. 1972년 전국 32개 시 16개 읍을 6개 권역으로 나누었는데, 밀양은 경주·충무·남원과 함께 ‘관광 도시’로 선정되었다. 1973년 하천 변 저지대에 있어서 해마다 홍수 피해를 입는 마을을 대상으로 8개 도에 1개씩의 집단 부락 건설 사업이 추진되었다. 1973년 5월 집단 부락을 건설한 밀양군 하남면 수산리[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서부락은 마을 회관 등 공동 시설 건립, 고등 소채 등 협업 소득 사업을 주 내용으로 하는 ‘30호 건설 사업 마을’로 선정되었다. 밀양군 상동면[현 밀양시 상동면] 포평마을은 1973년 5월 식량 증산의 효과적 수행을 위하여 쌀 증산 계약을 체결한 전국 24개 새마을 가운데 한 마을로 지정되었다.

1976년에 농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 생산 구조의 근원적 개선과 농가 소득의 획기적인 증대를 위하여 각 도별로 우수 새마을을 1개씩 선정하여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영농 지도를 전개하는 농촌 구조 개선 시범 사업을 계획하였다. 이때 경상남도에서는 유일하게 밀양군 상남면 예림리[현 밀양시 상남면 예림리]가 ‘시범 우수 마을’로 선정되었다.

1979년 현재 밀양군의 새마을 수는 278개소였다. 자조 마을 50개, 자립 마을 228개였고, 높은 단계의 마을인 자영과 복지 마을은 없었다. 1984년에 이르러 자립 마을은 244개가 되었고, 자영 마을은 44개, 복지 마을은 1개소로 늘어났다. 1984년 밀양군의 자립 새마을 비율은 84.4%로 전국 평균 60.6% 및 경남 평균 74.1%보다 높았는데, 1984년 당시 밀양군의 마을 수준은 전국과 경상남도의 마을 수준에 비하여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 지역 주민의 생활 환경을 크게 개선하였으며, 농가의 소득 증대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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