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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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錦燕 |
영어공식명칭 | Kim Geum-yeon |
이칭/별칭 | 김금연(金錦蓮)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선미 |
출생 시기/일시 | 1911년 - 김금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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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7년 - 김금연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28년 - 김금연 전주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5월 - 김금연 소녀회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11월 - 김금연 광주학생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1월 15일 - 김금연 경찰에 검거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10월 6일 - 김금연 광주지방법원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김금연 건국포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30년 - 김금연 광주여고보 독서회[소녀회] 참여 |
출생지 | 하동면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
거주|이주지 | 상생리 - 전라북도 전주군 이동면 상생리 |
학교|수학지 |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158번길 8[장동 39-12] |
학교|수학지 | 전주여자고등보통학교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모래내6길 14[인후동2가 35-1] |
활동지 | 광주 - 광주광역시 |
활동지 |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
성격 | 학생운동 |
성별 | 여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학생 독립운동가.
[가계]
김금연(金錦燕)[1911~?]은 1911년 밀양 하동면[현 밀양시 삼랑진읍]에서 출생하였다. 김금연(金錦蓮)이라고도 하였다.
[활동 사항]
김금연은 1927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28년 전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주여자고등학교]로 전학하였다. 1928년 5월 장매성의 자택에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의 소녀회에 가입하였다. 소녀회는 1927년 11월 광주여고보의 장매성, 박옥련, 고순례, 장경례, 암성금자, 남협협 등이 결성한 조직이었다. 소녀회는 1928년 회원을 확대하였는데, 당시 김금연, 박계남, 박채희, 박현숙, 김귀선 등이 새로 가입하였다. 이 무렵 광주 지역의 학생운동 조직은 성진회에서 학교별 비밀결사로 전환되어,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농업학교, 광주사범학교 등에서 독서회가 결성되었다. 소녀회는 이런 흐름에 부응하여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결성된 독서회로서, 소녀회를 주도한 장매성은 성진회의 중심인물 장재성의 동생이었다. 김금연은 당시 전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생이었지만,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할 당시 장매성 등과 친분이 있었기에 비밀결사의 회원으로 영입된 것으로 보인다.
소녀회는 “여성을 남성의 압박에서, 조선인을 일본의 압박에서, 무산대중을 자본계급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월 회비로 사회과학 서적과 팜플렛을 구입하여 학습과 토론으로 사회의식을 벼리었고, 다른 한편으로 독서회가 설립한 학생소비조합에 30원을 출자하는 등, 독서회와 연계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소녀회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금연 등 소녀회 학생들은 붕대나 약과 같은 의료품을 지급하고 부상 학생들을 돌보는 부분을 맡아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광주학생운동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독서회의 존재가 발각되면서 소녀회의 조직도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소녀회의 회원 모두가 일제 경찰에 검거되었다. 김금연은 1930년 1월 15일 전주에 거주하고 있다가, 광주에서 급파된 경찰에게 피검되어 광주로 이송되었다. 검거된 지 9개월 만에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재판대에 서게 되었다. 김금연은 1930년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