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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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儒龍 |
영어공식명칭 | Lee Yuryong |
이칭/별칭 | 운익(雲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은미 |
출생 시기/일시 | 1789년 - 이유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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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19년 - 이유룡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825년 - 이유룡 절충장군훈련원도감용양위와 중추부사첨지 겸 오위장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34년 - 이유룡 통정대부여산도호부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35년 - 이유룡 사복장 겸직 |
활동 시기/일시 | 1840년 - 이유룡 백령진첨사와 공주진우영토포사 겸 장연감목관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856년 - 이유룡 사망 |
출생지 | 퇴로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함평(咸平) |
대표 관직 | 부호군|남해수령|횡성수령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무신.
[가계]
이유룡(李儒龍)[1789~1856]의 본관은 함평(咸平)이고, 호는 운익(雲翼)이다. 1789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이유룡은 1819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무예가 대단하고 용력이 뛰어나,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을 비롯하여 여러 큰 진의 영장(營將)을 거쳤다. 진주진영 남해병마절제도위 겸 남해현감(晉州鎭營南海兵馬節制都尉兼南海縣監)을 지냈고, 1825년에는 절충장군 훈련원도감 용양위(折衝將軍訓練院都監龍驤衛)와 중추부사첨지 겸 오위장(中樞府使僉知兼五衛將)을 겸하였다. 1834년에는 통정대부여산도호부사(通政大夫礪山都護府使)에 제수되었고, 1835년에는 사복장(司僕將)도 겸직하였다. 1840년에는 왜선의 출몰에 대비하여서 백령진첨사(白翎鎭僉使)와 공주진우영토포사 겸 장연감목관(公州鎭右營討捕使兼長淵監牧官)을 맡기도 하였다. 남해(南海), 여산(礪山), 횡성(橫城)의 수령을 지내었으며, 수령 재임 시 치적이 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1851년(철종 2) 4월 12일의 기록에는 전(前) 횡성현감 이유룡을 죄주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벼슬은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이유룡은 1856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