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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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宜中 |
영어공식명칭 | Park Uijoong |
이칭/별칭 | 자허(子虛),정재(貞齋),박실(朴實),문경(文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병련 |
[정의]
고려 후기 밀양 출신의 문신.
[가계]
박의중(朴宜中)[1337~1403]의 본관은 밀성(密城)이며, 자는 자허(子虛), 호는 정재(貞齋)이다. 초명은 박실(朴實)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검교군기감을 지낸 박함(朴諴)이고, 할아버지는 판도판서 박화(朴華)이다. 아버지는 판도총랑 박인기(朴仁杞)이다. 첫 번째 부인은 별장 이수창(李壽昌)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한탑(韓塔)의 딸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아들은 박경문(朴景文)·박경무(朴景武)·박경빈(朴景贇)이고, 사위는 참판 이안우(李安愚)이다. 손자는 충청도병마절도사 박거겸(朴居謙) 형제다.
[활동 사항]
박의중은 1337년(충숙왕 복위 6)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1362년(공민왕 11)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의직장으로 등용되었다. 그 뒤 헌납이 되었고, 우왕 때 문하사인·좌사의대부·대사성 등을 거쳐 밀직제학이 되었다. 학문이 뛰어나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큰 기대를 받았고, 성균관에서 생도들의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1388년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철령위(鐵嶺衛) 철폐를 성사시킨 공으로 창왕 때 공신에 책봉되었다. 공양왕 때에는 서운관(書雲觀)에서 개경의 지운(地運)이 다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한양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소를 올리자, 풍수지리설에 의한 천도의 허황됨을 역설하며 반대하기도 하였다. 그 뒤 예문관제학 겸 대사성이 되었다.
1392년(태조 1) 조선이 개국한 뒤 박의중은 할머니의 고향인 전라북도 김제로 낙향하였다. 이후 태종이 검교참찬의정부사를 제수하며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403(태종 3) 김제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박의중의 저서로는 『정재일고(貞齋逸稿)』 3권이 있다.
[묘소]
박의중의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삼수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