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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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時乂 |
영어공식명칭 | Park Si-ye |
이칭/별칭 | 덕부(德夫),돈와(遯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병련 |
활동 시기/일시 | 1455년 6월 - 박시예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하자 은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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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제대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
묘소|단소 | 고례리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밀성(密城)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문신.
[가계]
박시예(朴時乂)[?~?]의 본관은 밀성(密城)[밀양]이며, 자는 덕부(德夫), 호는 돈와(遯窩)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에서 태어났다. 단종 선위 때 절의를 지킨 신하이다.
박시예는 태조 때 증찬성사이조판서(贈贊成事吏曺判書)를 지낸 박신열(朴臣悅)과 문화류씨 판각(判閣) 류춘경(柳春卿)의 딸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행산(杏山) 박세균(朴世均)이며, 할아버지는 도은(桃隱) 박문빈(朴文彬)이다. 아들은 박개주(朴介柱), 박원주(朴圓柱), 박말주(朴末柱), 박몽주(朴夢柱)이고, 사위는 군수 이학수(李學守)이다. 증손자가 채지당(採芝堂) 박귀원(朴龜元)이다.
[활동 사항]
박시예는 타고난 성품과 바탕이 빼어나 재예를 일찍 이루어 태종 때 과거에 올라 벼슬이 청송부사(靑松府使)에 이르렀다.
박시예는 1455년 6월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함을 보고 관복을 찢어 버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지금의 단장면 고례리 고야촌[姑射]의 협곡에 숨어 살면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호를 돈와(遯窩)라 지어 부르며 그 뜻을 되새겼다. 박시예는 시에서 “천년 산나무는 무능함을 부끄러워하며 일편단심으로 현릉(顯陵)을 꿈에 보네[千年山木愧無能 一片丹心夢顯陵]”라고 하였다.
[묘소]
박시예의 묘소는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고고등(鼓鼓嶝)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