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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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惇之 |
영어공식명칭 | Park Donzi |
이칭/별칭 | 박계양(朴啓陽),돈지(敦之),계신(季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병련 |
출생 시기/일시 | 1342년 1월 6일 - 박돈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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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60년 9월 - 박돈지 진사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360년 10월 - 박돈지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366년 - 박돈지 고공정랑·예문응교·지제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368년 - 박돈지 비서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389년 - 박돈지 명나라에서 사무역을 행한 일로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401년 - 박돈지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402년 - 박돈지 형조전서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11년 - 박돈지 검교참찬의정부사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422년 9월 2일 - 박돈지 사망 |
출생지 | 수산리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
묘소|단소 | 박돈지 묘소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밀양(密陽) |
대표 관직 | 참찬문하부사 |
[정의]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문신.
[가계]
박돈지(朴惇之)[1342~142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돈지(敦之) 또는 계신(季信)이다. 원래 이름은 박계양(朴啓陽)이었는데 박돈지로 개명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용장군 박성진(朴成進)이고, 할아버지는 판전교시사 박원(朴原)이다. 아버지는 대제학 박윤문(朴允文)이고, 어머니는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 김태현(金台鉉)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부인은 목사 홍만룡(洪萬龍)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며, 아들은 판도총랑(版圖摠郞) 박사제(朴思齊), 사위는 이의산(李義山)과 부윤 정경(鄭耕)이다.
[활동 사항]
박돈지는 1342년(충혜왕 후3) 1월 6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 9월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며, 10월에 병과(丙科) 5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364년 7월 고공좌랑, 12월 예의좌랑 등을 거쳐 1366년에 고공정랑·예문응교·지제교가 되었다. 1368년 내사사인, 1371년에 비서감에 올랐다.
박돈지는 1374년 장모와 통정하였다는 비판을 받았고, 1388년(창왕 즉위년) 10월에 명나라 신년 축하 사절단인 하정사(賀正使)의 한 사람으로 이색(李穡)·이숭인(李崇仁)·김사안(金士安) 등과 함께 명나라의 수도인 남경(南京)으로 가게 되었다. 이때 박돈지는 이숭인과 함께 명나라에서 법으로 금지된 사무역(私貿易)을 행하였고, 이런 사실이 귀국 후에 발각이 되어 1389년 고려 사신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이숭인과 함께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후 박돈지는 1398년(태조 7) 회례사로 일본에 가 육주목(六州牧) 오우치 요시히로[大内義弘]를 만나 왜구 근절을 교섭하고 왔으며, 그 공로로 판전중시사로 발탁되었다. 1401년(태종 원년)에는 일본에 사신으로 가 일본 지도를 가져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1402년 형조전서가 되었고, 이후 수문전제학·판군자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410년에는 야인들이 침범한 사실을 알리기 위한 주문사로 명나라에 갔다 와서 검교판한성부사가 되었고, 1411년 검교참찬의정부사에 임명되었다. 박돈지는 1422년(세종 4) 9월 2일 사망하였다.
[묘소]
박돈지의 묘소는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