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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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克一 |
영어공식명칭 | Kim Gukil |
이칭/별칭 | 백순(伯純),약봉(藥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하여주 |
[정의]
조선 전기 밀양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김극일(金克一)[1522~1585]의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통례 김만근(金萬謹)이고, 할아버지는 김예범(金禮範)이다. 아버지는 김진(金璡)이고, 어머니는 병절교위 민세경(閔世卿)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부인은 이위(李葳)의 딸 수안이씨(遂安李氏)이다. 동생 김수일(金守一)·김명일(金明一)·김성일(金誠一)·김복일(金復一)과 함께 ‘김씨오룡(金氏五龍)’으로도 불렸다.
[활동 사항]
김극일은 1522년(중종 1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동생 김명일·김성일과 함께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으며, 1546년(명종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정자에 임명되었다. 이후 수의부위·사용을 거쳐 1551년에 승문원박사가 되었다. 1553년 승정원주서가 되었고, 얼마 뒤 형조좌랑·사헌부감찰에 임명되었다. 1554년 홍원현감(洪原縣監), 1556년에는 청홍도도사(淸洪道都事)를 역임하였다.
김극일은 1558년 성균관직강·형조정랑·예조정랑을 거쳐 1557년 경상도도사로 부임하였고, 이후 예조정랑·군기시첨정·평해군수를 역임하였다. 1566년에는 사재감첨정을 거쳐 다시 예천군수에 임명되었으며, 1569년(선조 2) 성균관사성과 사도시정(司䆃寺正)을 거쳐 성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575년 밀양부사에 임명되었고, 1582년 내자시정으로 있으면서 1583년에는 사헌부장령을 겸하였다. 1583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 1585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극일의 저서로는 『약봉일고(藥峰逸稿)』가 있다.
[묘소]
김극일의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비리곡(飛鯉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극일은 아버지 김진, 동생 김수일·김명일·김성일·김복일과 함께 1685년(숙종 11) 건립된 사빈서원(泗濱書院)에 배향되었다.